한가로운 일상.

비가 오던 지난 목요일, 오랜만에 광화문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5월부터 하던 일을 쉬고 집에서 빈둥빈둥 지내고 있다.
하지만 보름 동안은 운전학원을 다니고 신변정리를 하느라 나름 바빴고,
한가해진 틈을 타서 미뤄오던 미술전시를 보러 나간 것이었다.

현재 임신 8주. 아직은 약간의 입덧 외에는 임신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신체적인 변화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몸이 무거워지기 전에 미뤄왔던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자 마음은 먹었으나..
시간이 많아지니 추진력도 떨어지고, 내가 무얼 하고 싶어 했던가 기억도 잘 안나는 것 같다.-_-;

미리 확인하는 것을 잊어서 기억대로만 가다보니,
내려야 하는 곳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렸다.
언젠가 동생이랑 엄마랑 셋이서 비오는 날 광화문, 인사동 거리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와 같은 날씨, 같은 거리를 걷고 있으니
마음이 무척 그리워졌다.

운동화를 신어야 마땅하지만, 혼자 비오는 날 나온 내 모습이 초라할까싶어 마음에 드는 귀걸이를 하고, 구두를 신고 귀찮은 화장은 생략해도 입술은 붉게 칠하고 쏘다녔다. 서두를 이유도 없어 느긋하게 걸었다.

사진기도 요즘은 도통 쓰지를 않아서, 무엇을 찍어야 좋을지 꺼내지도 못하고 들어갈 뻔 했는데, 마침 정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다.
장미의 계절이구나~

제작년인가 에버랜드 장미축제, 친구랑 갔었는데 참 좋았다.
온통 장미꽃밭에, 향기가 멀리서도 맡을 수 있고, 산뜻한 날씨, 시원한 바람. 유쾌한 분수.. 장미는 정말 예쁘다.

조금 싱겁지만, 바로 미술관에 들어가서 전시를 관람하고 바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충분했다. 가장 친근하고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좋아하는 주제로 하는 전시를, 너무 많은 인파로 붐비지 않는 쾌적한 상태로 전시를 관람했기때문에.

예전에 함께 왔던 후배 생각도 나고.. 이상하게 이 미술관에 올 때는 비오는 날이 많았던 것도 같고..
좋아하는 사진이 많아서 전시도록을 사고싶기도 했지만(가격도 저렴했다. 5천원!) 지난 도록들도 항상 팔고 있는 것 같아서 다음에 올 때도 사고 싶으면 그 때 사야지 하고 참았다. 한 두 번 전시도록을 산 적이 있지만, 다시 보는 일이 좀처럼 없었던 만큼..

보통 결혼하면 친정 엄마가 가장 그리워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시댁도 친정도 한동네라서 그런지, 신랑이 잘해줘서 그런지 전혀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문득 임신을 하고, 집에서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추억을 회상하게 되고..
또 미래에 나의 아가들과 함께 보낼 시간들을 상상하며 엄마와 보낸 시간들을 또 떠올리니 친정가족들 생각이 애틋하게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교육에 특히 신경쓰시거나, 멋진 직장여성은 아니었지만,
항상 나와 동생을 믿음과 관심으로 꾸준하게 지켜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보호해주셨다.
당연하고 쉬운 일 같지만, 그 진득하고 일관된 모습을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보이는 일이 막상 내가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니 아득하게 느껴진다. 함께 했던 하나하나의 추억들이 참 짧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결혼할 때 엄마가 '지금까지 함께 한 시간도 짧았던 것 같은데..' 하시는 말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 말이 이제 와서 와닿는다. 어머니로서 우리 엄마는 100점만점에 200점이었다. 아기를 낳으면 그 힘들면서도 행복할 시간 일 분 일 초를 나도 우리 엄마가 그랬듯 내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다. 쉬울 것 같지만은 않지만..



이 책.
어린이 웃음 탈무드.
동네 시장에 정말 정말 큰 서점이 있었다.
기억으로는 이름이 한길서점 이었던 것 같은데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랑 같이 가끔 책을 사러 그 서점에 갔는데, 이 책을 그 곳에서 샀다. 그 서점의 구조, 빛, 냄새, 종이포장지 기억에 생생하다.

초등학교 3학년 쯤때 산 것 같다. 슬슬 긴 문장도 읽고 이해하기 시작할 무렵. 이 책으로 처음 '피장파장'이라는 단어도 알게 되고.
책 곳곳에는 기름때가 묻어있는데, 아마 부침개를 먹으면서 책을 봤던 탓인 것 같다.ㅎㅎ 좀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하다.

실제 탈무드가 어떤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재치있고 재미있다. 앞부분의 이야기들은 짧고 웃음거리 위주이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도 길어지고 삶의 지혜를 이야기한다. 요즘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어린 시절에는 뜻도 모르고 읽고 웃었던 이야기들이 지금은 또 새롭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걱정♣
어떤 마부 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지나가는 장삿군을 보고 안스럽게 여긴 나머지,
"여보시오, 내 마차에 타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고맙게 생각한 그 장삿군은 마차에 타긴 탔는데 등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부는,
"짐을 내려놓는 게 편하지 않소."
하고 말했습니다.
"나를 태운 것만으로도 말은 힘이 더 들텐데 이 짐까지 내려서 실을 수가 있습니까? 짐만은 절대로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장삿군은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책을 잘 보관해서 나중에 나의 아이들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읽어주고 싶다.

by Hikaru | 2009/05/24 00:2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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